<나는 사포인가, 가시인가?> – 22.08.14

우리는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사랑해도 미워해도 존경 하더라도.나는 종이 줄에 비수인지 대못거나 바람?나는 어떤 자극을 주는 사람일까?나란 사람도 있는 사람에게는 종이 줄 같은 사람 어떤 사람들은 가시 같은 사람일까.그래도 종이 줄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인생.종이 줄처럼 자극은 주되 상대를 더 빛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저는 대못 같은 사람이었다.세상, 유해한 사람.그것은 상대를 끌어안는다고 했기 때문이다.내가 품고 상대방을 바꾸려 했던 때문이다.정확히는 자신의 틀에 맞추고 싶어서였다.그저 사랑한다는 이유로 대못처럼 상처 주는 사람이었다.특히 저랑 성격이 맞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욱 치명상을 입혔다.결국 싸우게 됐으니까.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냈다.”왜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과 잘 생각한 바 있다.그러나 나의 존재만으로도 타인에게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모든 존재가 자극을 서로 주고받는다.지금 내 책상도 글을 쓴 내 팔꿈치에 자극을 전하게.밝은 노트북 화면이 내 눈을 눈부시게 하게.그렇게 나도 사람들과 사물과 자연과 자극을 교환한다.존재 자체로 자극했던 내가 말도 얼마나 많은 자극을 준 것일까?지금까지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도 누군가에 통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하지만 모두 상황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에 아픈 자극을 주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그것을 몰랐다.어린 시절 가장 소중한 친구 성희에게 있어서 나는 대못 같은 사람이었다.선희를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저와 같은 생각을 하게 하고 싶었다.그때는 제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은 아니다” 다른 “것 같던 어리석은 시대, 성희는 다행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많은 자극을 준 나를 선희는 든다고 생각한 것 같다.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해도, 나 이외의 사람은 아닐 수 없다.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랑이었다.부모도 갖지 못하는 것이 아이임을 나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싶었을까.누군가가 나에 의해서 변화했다면 그것은 실수인가.트리거가 되었지만, 결국 그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게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세상 사람들이 이를 알면 적어도 서로를 상처 주고 사는 것은 없을텐데 말이야.저에 가시 같은 살결이 맞지 않는 사람이란 원래 관계도 시작하지 않았을 텐데.나도 30세가 된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30년 동안 가시 같던 나의 말과 행동으로 괴로워하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내가 원하지 않는 삶에 나를 맞추려는 자는 멀어지기.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인생을 응원하는 자와는 얼씬.나에게 달라지라고 명령하는 자는 멀어지기.나를 나로서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친해지기.휴대 전화의 밝기 조절처럼 내게 오는 자극을 조절하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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